스포츠란 것은 그냥 즐거운 놀이판으로 즐기면 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이 놀이판이 종종 정치적 동기에 쉽게 연동된다. 워낙에 대중의 정서적 감응력이 잘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의 입에서 동계 올림픽의 정치적 효과를 더욱더 지속시키고 싶어 하는 제안이 나오기도 한다. ‘경평 축구전’ 이야기도 나왔다.
화해와 대동단결을 위한 축구 경기에 또 정색을 하고 평양 축구전 아니냐고 비아냥댈 필요는 없다. 그러나 ‘경평’이라는 그 명칭은 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경평축구대항전’이 있던 1930년 전후의 ‘경평’이라는 말은 지금의 ‘서울특별시와 평양직할시’라는 뜻보다는 당시의 ‘경성’과 ‘평양’의 준말이었다. 당시 경성은 경기도 도청 소재지 정도였다. 좁은 어휘의미론으로는 거의 동의어 같지만 역사적 의미를 통해 돌이켜보면 아주 큰 의미 차이를 가지고 있다.
더구나 ‘경평’은 서울과 평양이라는 특정한 두 도시의 제한적인 경쟁처럼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멀리 본다면 양측의 선발팀 경기로 시작하여 훗날 남과 북을 망라하는 연맹전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남과 북의 분위기가 괜찮던 1990년대 초와 2000년대 초에 사용해 본 적이 있는 ‘남북통일축구대회’도 괜찮으나 성급히 ‘통일’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자칫 정치적 입김을 불러들일지도 몰라 조심스럽다.
이번 겨울 올림픽을 치르면서 거둔 열매 가운데서 가장 값진 것은 스포츠가 정치에 이용을 당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영향을 미쳐 평화의 대의를 향하게 분위기를 바꾼 것이다. 스포츠와 정치의 선순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남과 북의 축구팀이 만나 친선을 꾀해도 좋고 우열을 다투어도 좋다. 정치의 도구로 악용되지 말고 정치를 선한 도구로 변모시키는 역할을 다해 주었으면 좋겠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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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동작
말은 일정한 동작을 동반한다. 그래서 말할 때는 표정, 손짓, 고갯짓 따위도 마치 언어의 한 부분인 것처럼 의미 있게 사용하게 된다. 달리 말한다면 말이란 것은 소리와 몸짓이 함께 어우러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오로지 언어만으로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 ‘느낌’과 ‘의미의 여운’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문화권의 특색이나 역사적 경험에 따라 특정한 행동을 말에 곁들이는 전형적 표현 방식들이 드물지 않다. 반가울 때 손을 잡는다든지 종종 껴안거나 뺨을 부비기도 하고 또 신뢰감을 보여주기 위해 어깨를 툭툭 치기도 하고 약속을 강조하기 위해 손가락을 걸기도 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정말 조심해야 한다. 흔히 서구 사람들은 호의를 나타낼 때 상대방의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는데 우리의 풍속으로는 도발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반대로 우리는 마음에 드는 손아랫사람의 머리를 쓰다듬는 경우가 있는데 외국에서는 이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니 대화 중에 상대의 몸에 손을 대려면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화적인 유산도 아닌 개개인의 나쁜 손버릇이 마치 무슨 의미 있는 표현이었던 양 이런저런 변명에 이용되는 것은 여간 기가 차는 일이 아니다. 이성의 제자한테 ‘격려차’ 혹은 ‘가슴으로 연기하라고’ 가슴을 툭툭 쳤다? 어찌 이런 동작이 격려라는 언어활동과 연동이 되는가? 위계질서의 우위를 차지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몸에 동의 없이 손을 대었다는 것은 폭력의 한 형태이다. 폭력을 행사하고 마치 자연스러운 언어 표현의 한 방식인 양 억지를 부린다. 폭력을 행사하고 ‘사랑의 매’였다고 우기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