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우리가 임진왜란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때만 해도 영어는 그저 그런 여러 언어 가운데 하나였다. 그 이후 약 300여 년 동안 영어는 눈부신 발전을 했다. 그 이전의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이 누렸던 국제적 매개 기능을 영어가 넘겨받은 것이다. 그 힘의 원천은? 당연히 경제력과 군사력이 그 바탕이었다.
영국의 힘은 20세기에 들어오며 사그라졌다. 그리고 그 후계자는, 영어를 위해서라면 지극히 다행스럽게, 미국이었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새로운 패권을 향유했다. 미국은 각종 대외원조, 군사동맹, 국제기구 등을 주도하며 수많은 나라의 지도부에 동료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많은 유학생들을 받아 온 세계에 ‘보편적 지식인’들을 퍼뜨렸다. 즉 영어는 지식인들의 보편적 언어로 등극한 것이다.
영어는 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오락의 언어로 변신했다. 잘 놀기 위해서도 영어가 필요해진 것이다. 게다가 최근의 정보 기술의 발전은 영어의 패권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컴퓨터 자판의 기본 배열을 영어식 알파벳으로 삼아서 여러 변종 알파벳을 배제한 것이다. 또 각종 컴퓨터 활용 프로그램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는 영어에 대한 기초 지식 없이는 대단히 힘들어졌다.
마지막으로 영어는 또 한 가지의 힘을 자랑한다. 바로 시장의 힘이다. ‘영어’라는 언어, 아니 ‘과목’은 가장 이익이 많이 남는 ‘교육 상품’이다. 많은 소수언어들이 변두리로 밀려났다. 그러다 보니 지구상의 수많은 언어들 가운데 영어는 일종의 황소개구리 구실을 한다. 언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위험한 종으로 지적받는 것이다. 물론 늘 비판만 할 것은 아니다. 영어의 패권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가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아가기도 한다. 위기가 가장 큰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