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어’다. 문제는 그 세계어에 대한 개념이 좀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온 세계인이 다 알고 있는 언어? 그건 아니다. 아직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조금만 열심히 배우면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 이건 비슷하게 맞는다.
아직도 이 세계에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더욱 많다. 그럼에도 이방인에게는 으레 영어로 말을 건다. 그리고 영어 질문에 대답을 못하거나 하면 민망해한다. 다시 말해서 모두 잘 알아서 세계어가 아니라 당연히 잘 알아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세계어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어의 위력이다.
영어는 잘 몰라도 쓸 수밖에 없다. 영어도 일본어도 모르는 한국인과 역시 영어도 한국어도 모르는 일본인이 외국에서 만나서 무언가 말을 하려면 엉망진창의 영어로 말을 하는 수밖에는 방도가 없다. 또한 이런 것이 결코 흉이 아니다. 오히려 최선의 문제 해결 방식이다.
세계어는 어쩔 수 없이 상처투성이의 언어가 된다. 오만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 주워섬기니 불가피하게 언어는 많이 망가진다. 그것이 세계어가 된 업보이고 대가이다. 그래서 세계어를 쓰면서 자주 틀리는 것을 너무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자주 틀리는 것, 헛갈리거나 실수하는 것은 세계어의 숙명이다.
세계어는 무슨 이론적 바탕으로 정해 놓은 것이 아니다. 그저 사회적 추세이다. 그 추세를 각종 국제기구와 국제 행사에 반영해서 사용 언어를 선택한다. 그렇기에 하나의 세계어를 배우는 데 모든 것을 다 거는 것은 그리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차라리 ‘세계어로서의 영어’의 한계선을 어느 정도 설정해 놓고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지금처럼 무한정 배우는 것은 고액의 학습비용을 곧바로 매몰비용으로 처리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