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정치판에서 언어 문제로 입씨름이 붙었다. ‘3D 프린터’를 [삼디]라고 읽느냐 [스리디]라고 읽느냐 하는 문제다. 이상하게도 정치권에서 영어 발음 같은 언어 문제로 다툼이 생기면 대개 비본질적인 논쟁으로 비화한다. 여러 해 전에 ‘오렌지’냐 ‘어륀지’냐 하던 논쟁도 정책 수준을 무척 저급하게 만들었던 추억으로 남았다.
옛날 군에서 지급한 소총은 M1[엠원]이었다. 후에 M16이 지급됐다. 보통 [엠십육]이라고도 했지만 [엠식스틴]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에 국산 고등훈련기 T-50은 [티오십]이고 보잉 707도 보통 [칠공칠]이라 한다. 역사 수업에서 배운 제국주의의 삼비(3B) 정책과 삼시(3C) 정책은 아무도 [스리비]나 [스리시]라고 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힘든 직업을 가리키는 ‘3D’ 업종은 보통 [스리디 업종]이 아니라 [삼디 업종]이라 한다. 연필 ‘4B'도 보통 [사비]라 하지 [포비]라 하지 않는다. 그러니 도대체 발음의 원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언어 전문가로서는 민망스럽게도 ‘특별한 원리가 없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이 두 가지 발음법은 윤리 문제도, 언어 원리의 문제도 아니다. 또 지식의 문제도 아니다. 그저 인습과 취향의 차이에 더 가깝다. 이런 것으로 누가 더 유능한 사람인지는 도저히 평가할 수 없다. ‘3D’를 차라리 ‘삼차원’ 혹은 ‘입체’라고 표현했다면 더 나았겠다.
이번 대선은 수많은 시민들이 무려 스무 번 넘게 길거리에서 ‘자기 이익’을 넘어서서 헌신함으로써 얻어낸 ‘역사적 기회’이다. 이 기회를 의미 없는 말꼬리 잡기로 낭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말로는 ‘통합’이면서 실천은 ‘분열’과 ‘파열’로 나아가고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