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고(一考)라는 말은 한번 고려해 본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일고를 해 보다”와 같이 긍정적으로 쓰이는 경우보다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부정적인 맥락에서 자주 쓰인다. 상대의 주장이나 의견을 뿌리째 부정하는 말이다. 겉으로는 격조 있는 표현 같으면서도 대단히 결기 있고 서슬이 퍼런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단호한 태도를 보이기에는 적절할 수 있겠지만 대화의 끈을 이어나가는 데에는 오히려 자승자박이 된다. 대화를 이어나갈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어야 할 경우에는 쓰기에 적절치 못하고, 좀 완고해 보이는 선비들이나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는 외골수 사상가들이 쓴다면 그럴듯할 것 같다.
이보다 좀 유연해 보이는 표현이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이다. 대개 융통성이나 자율권이 별로 없는 공직자들이 자주 쓰는 것 같다. 이러한 표현도 지속적인 대화에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말보다는 약간의 여유 공간이 엿보인다. 이럴 경우에는 제삼자의 중재를 거치면 타협의 실마리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는 ‘협치’라는 말이 꽤 많이 사용된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협애하게 빠져 있지 말고 좀 통 큰 ‘공동체 정치’를 하자는 뜻일 것이다. 그러한 협치를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의 통로를 지속적으로 확보해두는 것이다. 곧 상대방의 발언이나 주장에 대해 최소한 일고의 가치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배수진이니 되돌아갈 다리를 불사른다느니 하는 것은 무인의 용맹함을 드러내는 전투적인 말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협치를 위해서 최소한으로 공유해야 할 요소는 바로 ‘일고의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