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기엔 거의 같은 말 같아도 이것저것 따져 보면 사물을 보는 관점을 개선해야 할 경우가 있다. 6월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다. 넓은 의미에서 재난이나 고통스러운 일을 당해 피신하는 경우는 보통 ‘피난민’이라고 하지만 국경을 넘는 경우에는 ‘난민’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특수한 경우가 탈북자의 경우이다. 어려운 상황을 피해서 왔으니 ‘피난민’이라고 할 만도 하고, 사실상의 국경을 넘어왔으니 ‘난민’이라고 할 만도 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도 저도 아닌 ‘탈북자’라는 특수한 이름이 주어졌다. 또 법적으로도 ‘특수한 대우’를 해 준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정치적’인 판단과 ‘안보’에 연동된 조치를 받는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 조치는 엄연히 법적인 틀과 윤리적인 공감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탈북자들에게 보편적인 난민이 아닌 특수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정치와 안보 문제만 생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일반적인 난민보다 더 특수한 차원에서 그들을 우대하고 더욱 인권친화적인 조치를 취하자고 하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그들의 처지에 도움이 될 만한 언론인들과 변호사들, 그리고 사회봉사자들과는 ‘개방적인 연결’이 필요하다. 그것마저 막는다면 ‘탈북’의 긍정적인 가치를 훼손하고 만다.
그들이 고향을 떠나 난민의 길을 선택한 것이 특별한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진정 인간적인 대우를 갈구한 결과였다면, 당연히 그들에게 민주적이고 인도적인 대우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정치적으로만 이용하고 인도적으로 외면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면 차라리 그들을 국제적인 표준에 의한 보편적 ‘난민’으로 대우하도록 하는 것이 더욱 인도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