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는 착하고 아름다운 말도 있지만, 반대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회복 불가능한 낙인을 찍는 말도 있다. 말은 사회를 지키는 유용한 수단인 동시에 그것을 무너뜨리는 흉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을 지혜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증오를 퍼뜨려 파괴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독일의 나치스는 유대인과 집시에 대한 증오와 편견을 퍼뜨려 오랜 세월 형성되어온 사회적 통합을 일시에 무너뜨렸다. 미국의 일부 보수 세력도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아직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지역 차별, 장애인 차별에다가 근간에는 외국인 차별까지, 심할 경우에는 특정 종교에 대한 부당한 표현까지 언어적 자유가 오용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반쪽을 차지하는 여성에 대한 혐오감까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노출되면서 범죄와의 연관을 거론하게 된다. 이젠 이러한 혐오 표현이 난무하게 된 사회 구조와 환경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이런 현상의 밑바닥에는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경멸이 깔려 있다고 한다. 공식적인 사회적 소통망에서 주변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구조를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의사결정 과정 전반에 대한 혁신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모든 의회 심급, 각종 공공위원회, 총회, 평의회 종류에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몫을 의무적으로 배정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모든 의회적, 대의적 기구는 ‘현실에 자신의 몫을 차지한 사람들’만이 중심이 되었다. 여기에서 제외되거나 주변화된 소수자와 약자들의 ‘의석’을 보장해야 언어 사용 방식을 혁신할 수 있다. 의회 제도와 의사결정 집단 구성원 내부의 변화를 불러와야 한다는 말이다. 근대 사회가 언어의 혁신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근대의 완성 역시 새로운 언어적 제도의 혁신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