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말을 쉽게, 순진하게 믿는 것보다는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 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언어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길이다. 또 불투명하거나 엉뚱해 보이는 단어의 개념도 깐깐하게 따져 보는 것도 현명한 언어 사용 방식이다. 더구나 사회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추상적 표현이 많아지기 때문에 더욱더 똑똑해져야 하고 언론 매체도 더 기여를 해야 한다.
특히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다루는 경제 관련 어휘는 무엇보다도 그 개념이 정확하게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익과 손해를 가름할 수 있고, 또 적극적인 의미의 시장 참여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종종 언어가 그 길을 가로막곤 한다. 예를 들어 ‘마이너스 금리’ 같은 말은 전통 개념에 익숙한 사람들한테는 한동안 멍해지는 개념이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번에는 우리도 ‘양적 완화’를 해야 한단다. 반대 의견들이 나오니 이번에는 ‘한국형 양적 완화’란다. 무언가 대단히 심각한 결정이 내려질 모양인데 이것이 우리 살림에 덕이 된다는 말인지 무언가 각오하란 말인지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다. 전문성이 대중성을 압도해 버리는 복잡한 담론, 대개 이런 곳에 무언가 수상한 권모술수들이 꾀어들게 되어 있다.
더구나 이 말이 ‘한국은행의 발권력’, ‘비전통적 통화 정책’, 심지어 ‘헬리콥터 화폐’ 등의 생소한 말과 연동되는 것을 보니 여차하면 각자의 흥망을 각오하란 말처럼도 들린다. 이것은 돈을 찍어내는 주체만 다를 뿐이지 위조지폐 만드는 것과 모양새가 똑같아 더욱 수상하다. 이런 발언들을 그대로 받아쓰기만 해서 보도하는 것은 독자들이 언어의 권모술수에 넘어가기 딱 좋게 방치하는 일이다. 언론인과 전문가들은 도대체 누가 더 손해 보고 누가 이익을 보는지, 그리고 누가 상이나 벌을 받게 되는지를 명료하게 보도하고 설명해야만 그 권모술수에 동조하지 않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