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족 윤리’만큼은 우리의 문화권이 가장 반듯한 편이라고 자부해왔는데, 최근 벌어진 아동학대 사건들을 보면 그런 믿음에 의구심이 생긴다. 더구나 남의 자식도 아니고 자기 자녀를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로 포악하게 해친 것은 특별히 ‘나쁜 사람’이 저지른 사건이라고 단순히 볼 일이 아니다. 일종의 사회적인 병리 현상으로 보고 신중히 진단해서 치유해야 할 문제다.
이런 병리 현상에 대한 조사와 분석은 수사관과 정신의학자들의 몫이겠지만, 말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실제 출산을 통해 맺어진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닌 재혼을 통해 맺어진 사이에서는 ‘의붓-’이라는 접두사를 붙여서 ‘의붓아버지’ ‘의붓어머니’로, 혹은 ‘계부’ ‘계모’로 그 양친을 일컫는다. ‘혈연’을 귀중하게 여기다 보니 그 핏줄에 무언가의 ‘굴절’이 생긴 것을 그대로 눈감고 지나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다가 의붓아버지나 의붓어머니와 관계된 옛날이야기나 속담들을 보면 늘 고약한 역할을 맡고 있어서 좋지 않은 선입관을 주기에 딱 알맞다. 그런데다 요즘 일어난 아동학대 사건에 일부 이러한 관계의 부모가 연관되어 버렸으니 사람들의 선입관이 더욱더 견고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어린이들이 어른들한테서 피해를 당하는 것은 모든 어른들이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할 문제이지, 재혼한 사람들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인과관계를 크게 곡해하는 일이다. 또 많은 사람들의 인격에 불신을 심어주는 위험한 언어폭력이기도 하다. 옛날과 달리 이제는 이혼과 재혼이 무척 자유스럽다. 따라서 이 문제를 우물우물 지나칠 것이 아니다. 언론 매체가 이러한 어휘를 미리 걸러내야 한다. 남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든지 겪을 수도 있는 보편적인 문제로 보자는 말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