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믿어지지는 않겠지만 정치, 법률, 종교 등의 사회제도는 언어가 그 중심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언어가 돈이나 권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특히 법률은 온통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시피 한 제도이다. 그래서 언어를 잘 관리해야 하고 언어의 기능에 적절히 적응해야 한다. 그렇지만 법률이 모든 언어를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법률적으로 사용 가능한 ‘구체적인 개념’을 가진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요즘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에서 ‘애국심’이라는 용어가 공무원으로서 필요한 핵심 가치의 하나로 지정된 모양이다. 애국심은 마치 기쁨이나 슬픔, 그리움처럼 매우 감성적인 현상을 나타내는 단어의 하나이다. 이러한 심리적 현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무척 어렵다. 나라 생각을 하면 그저 그냥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하는 것이지 애국가를 4절까지 다 부른다고 해서 애국심이 강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이 애국을 강조한다고 하는데, 정치인들이 애국을 강조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법률 전문가들이 법안에 그 단어를 쓰는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마치 교육법에 제자 사랑 조항이, 혹은 군법에 군인은 용감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자. 그것은 법이 아니라 문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법률적인 합목적성을 이렇게 감성적이고도 직관적인 개념에 의존한다면 공무원 제도의 투명성은 보나 마나 상처를 받게 된다.
우리의 근대 이전 사회에서 충성과 효도, 그리고 열녀의 길을 법률에서도 강조하고 철학에서도 기본으로 삼았지만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시민 정신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이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복고적인 법 정신은 어서 극복되어야 한다. 애국이라는 단어는 반란이나 폭동을 일으키는 자들도 무척 애용했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