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선교 활동을 통해 종교적 확신을 확산시킨다. 가장 오래된 방식은 통치자를 개종시키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라든지 프랑크왕국의 클로비스처럼 통치자의 개종이 백성의 신앙을 규정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는 과정에서도 왕실의 개종이 선행했던 것도 그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선교 방식은 개개인에 대한 설득이다. 곧 대화를 통하는 방식이다.
대화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대화라는 것이 무척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엄중한 규칙들이 나타난다. 그것은 서로의 상호행위를 기초로 하며 모든 발화 단위가 일정한 맥락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것 등이다. 또 말 순서를 지키고 발언권을 분배하기 위한 규칙도 분석되는데 이를 지키지 않으면 그것은 대화가 아닌 강압이나 언어적 공격이나 다름없다.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명령과 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긍 같은 것은 당연히 대화로 인정하기 어렵다.
대화 가운데 또 중요한 것은 화제를 선정하는 권리다. 상대방이 선정한 화제에 관심이 가지 않으면 누구든지 무관심을 드러낼 권리가 있다. 왜 이 문제에 관심이 없냐고 집요하게 따지고 드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우리가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시민 문화가 아니다. 자신이 그러한 화제에 끼어들기 싫다는 것을 표시하는 행위도 의당 존중받아야 한다.
특정 종교를 열성적으로 선교하는 사람들의 신앙심은 충분히 믿어 의심치 않으나 많은 경우에 이들의 공세적인 대화 방식은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대화라는 것은 화제의 선택부터 발언권의 분배에 이르기까지 잘 지켜야 하는 ‘질서 잡힌 행동 체계’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다듬어져 있는 까다로운 문화적 기제를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아무리 신성한 교리나 신앙의 문제라 하더라도 이런 질서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강요하는 대화는 부작용과 역효과만 불러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