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들 자신이 다녔던 학교를 명문이라 일컫는다고 질색하랴? 모교가 유명해지면 공부와는 담을 쌓았던 졸업생들도 괜히 으쓱해질 것이다. 또 명문으로 이름난 학교 졸업생들은 취업 과정에서 얻는 이익도 상당할 것이다. 명문이라는 평판은 개인적으로도 대단히 큰 자산이지만 사회적으로도 큰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돌이켜 생각해 보자. 한국 사회의 명문은 과연 무엇인가? 한국의 명문은 순위가 바뀌지도 않고 새로운 명문의 탄생도 거의 불가능하다. 한번 명문으로 꼽히면 다시는 주저앉지 않는다. 한 대학이 명문이라는 말을 들으면 모든 학과가 명문 대우를 받는다. 심지어 신설 학과나 부속기관까지도. 공정한 경쟁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명문의 의미는 사실상 기득권을 뜻한다. 그렇기에 명문이라는 소문이 중요하지 그 내실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일단 한 학교 출신을 많이 채용하면 내부의 위계질서를 통해 후배들은 선배들한테 충성을 바치며 성과가 빨리 나타난다. 그런 식으로 특정 학교 출신을 많이 채용하면 그들은 더 이상 공적 조직이 아니라 사적 조직이 될 위험성이 더 커진다. 최고경영자가 동문일 경우는 더 심각하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
학교 차이에 대한 세평은 믿을 게 못 된다. 졸업생들의 활동이 ‘지금’ ‘현장에서’ 얼마나 공적으로 의미가 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분명한 공적인 잣대에 의해서 명문이라는 명예를 허락해야 한다. 그래서 그 명예가 떠도는 소문 덕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들의 절차탁마의 산물이자 공적인 평가의 결과여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기술의 명문, 예술의 명문, 사회봉사의 명문, 공동체의 선구자를 배출한 명문 등의 다양한 명문들을 기대해 본다. 명문이라는 단어는 그 아름다운 이름에 몹시도 고약한 기능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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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의미
가족은 혈연관계와 사회경제적 활동의 기본 단위로 오래 기능해왔다. 시대에 따라 교육과 신앙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또 사회계급적 자산으로서의 기능도 있다. 이러던 가족이 무언가 변화를 맞고 있다. 독신 생활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고 이제는 동성끼리도 결혼을 하겠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법적으로 인정받기까지 한다. 가족이 수행해온 성적인 분업 체계도 흔들리는 것이다. 가족이란 낱말의 뜻도 재고해 보게 된다.
농경사회는 대가족제도가 유용했고, 시민사회는 핵가족제도가 적절했다. 지금은 모든 것이 개별화되고 있다. 그리고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 세상에 이렇게 가혹한 경쟁 사회가 또 있을까 하는 한탄이 나온다. 정신적으로는 이미 모든 사람이 기러기가족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이럴 때 가족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즐거움보다는 지겨움과 불편함, 그리고 부담감만 주고 있는 제도 아닌가? 그러면서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족한테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만 앞선다.
이제는 하나하나 작은 가족보다는 더 큰 의미의 사회공동체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공동체가 다양한 종류의 가족을 품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독신가족, 한부모가족, 조손가족, 동성가족 등만이 아니라 가칭 공동거주가족이라든지 조합가족이라든지 아니면 옛날 수양부모가 있었던 것처럼 서로 배려하고 후원해주는 수양가족, 혹은 후원가족 등의 다양한 기초 단위가 필요하다. 적극적으로 민법의 개정도 필요하다.
우리는 어느새 아무런 준비 없이 다른 시대에 들어서버린 것 같다. 그리고 무언지 모를 어두컴컴한 시대에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내던져버리지 않았는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가족의 복원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적 가족 제도가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가족의 대안적 의미와 함께 새로운 대안적 사회가 더 빨리 다가올 것이다. 제발 피곤한 사회가 아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