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천안공장으로 한 청년이 찾아왔다. 지금도 별다를 게 없지만 그때의 미래산업은 정말 보잘 것 없는 규모의 중소기업이었다. 직원공채 같은 건 부담스러워서 시도해본 적도 없었다. 자매결연을 맺은 공업고등학교에서 보내주는 아이들을 키워서 쓰곤 했다. 이렇다 할 학벌을 갖춘 고급인력이란 아예 욕심도 내지 않았다. 노력해봐야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절이라 이 청년의 방문은 더욱 의외였다. 가져온 이력서며 성적증명서를 보니 첫눈에도 매우 우수한 인재라는 판단이 들었다.
반가움에 앞서 나는 그 속마음이 궁금했다. 저 정도의 조건이라면 대기업으로 달려가야 정상이었다. 한 번에 실패하면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반드시 대기업에 들어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세태가 아닌가. 지금도 미래산업은 주변에 보이느니 허허벌판 아니면 공장뿐인 천안 외곽에 자리잡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조건으로 충분하다. 놀기 힘들고 장가가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이 청년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자네 실력을 보니 대기업을 들어가도 충분할 것 같은데 어째서 미래를 찾아올 생각을 했나?"
"대기업은 싫습니다. 저는 비전 있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어째서 그런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무슨 기회 말인가?"
"제가 공부하고 제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유망한 중소기업에서 일한다면 저한테도 많은 기회가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대기업에는 경쟁자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당돌했지만 밉지 않은 녀석이었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허락했으면서도 나는 일부로 계속 질문을 던졌다.
"이 촌구석에서 일하기 답답하지 않겠나?"
"방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느니 금상첨화 아닙니까?"
"자네가 바라는 것을 이루기에는 회사가 너무 작지 않은가?"
"사실 저는 좀더 작은 회사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여기도 너무 커서 좀 불만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사옥도 멋있고, 사장님도 멋있고, 아무튼 저는 꼭 여기서 일해야 되겠습니다."
얼마 전 그 박우열이 장가를 갔다. 말주변도 없이 직원들 주례에 하도 시달리다 보니 이제는 아예 공식적으로 주례거절을 선언했던 바였다. 그런데도 박우열은 예의 넉살로 나를 구워삶았다. 내가 주례를 서지 않으면 결혼식을 안 하겠다며 협박했던 것이다. 평소의 성정으로 보아 박우열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그러니 울며 겨자 먹기로 주례를 허락할 수밖에. 결혼식 당일. 나는 예식장 구석에 앉아 수첩을 꺼내놓고 복잡한 머릿속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신랑 친구들이 내게 몰려왔다. 강연이다 인터뷰다 해서 한동안 꽤나 번잡을 떨었기 때문인지, 미래산업과 정문술이라는 이름이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는 듯했다. 더구나 신랑친구들도 대부분 비슷한 업계에서 일하는 녀석들인지라 대부분은 나를 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마땅한 주례사 내용도 잡히지 않던 차에 그 녀석들과의 대화는 오히려 반가웠다.
"우열이놈, 미래에 가서 무지 출세했습니다. 동기들 중에서 아마 제일 팔자 좋은 녀석일 겁니다."
"자네들은 훌륭한 기업에서 좋은 대우받으며 일하고 있지 않나."
"회사만 크면 뭐합니까. 장래도 불투명하고 매일 그날이 그날입니다."
"미래산업이라고 뭐 다를 게 있겠나."
"에이, 그래도 우열이는 지금 과장 아닙니까. 저희들은 기껏해야 대립니다, 대리. 게다가 우열이는 팀장이니까 저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할 것 아닙니까. 동기들은 우열이를 제일 부러워한다니 까요."
그가 미래산업을 선택했던 것은 그저 단순한 객기가 아니라 나름대로 충분한 분석과 연구의결과일 것이다. 그 많은 중소기업 중에서 굳이 천안까지 내려와 미래산업을 선택한 것도 심상치 않거니와, 소위 말하는 대기업에서 그려질 자신의 인생지도와 미래산업에서 그려질 또 하나의 인생지도를 두고 그가 얼마나 고심했겠는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동기들이 모두 대기업으로만 향할 때 엉뚱하게도 박우열은 스스로 지방의 중소기업을 택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기회가 더 낳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중소기업에서 성장하면 자기분야 이외의 것들도 접할 기회가 더 많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중소기업에서 성장하면 자기분야 이외의 것들도 접할 기회가 많아진다. 박우열은 기술개발 분야뿐 아니라 조직관리와 리더십 등 경영전반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어했다. 박우열의 착상은 적중했다. 시셋말로 동기들 중에서 '가장 출세한 녀석'이 된 것이다.
그 녀석은 여러모로 나와 닮았다. 평범하고 편안한 것을 싫어한다는 점 말고는 욕심이 많은 점이나 저돌적이라는 점등이 특히 그렇다. 그를 보면 나의 젊은 날이 생각나서 흐뭇하다. 그 녀석도 나처럼 타고난 '거꾸로 경영인'이다. "대기업은 싫습니다. 저는 비전 있는 중소기업에서 잃고 싶습니다." 그가 미래산업을 선택했던 것은 그저 단순한 객기가 아니라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기회가 더 많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동기들이 모두 대기업으로만 향할 때 엉뚱하게도 박우열은 스스로 지방의 중소기업을 택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기회가 더 많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