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발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의 웬만한 정보·오락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는 게 있다. 음식을 먹거나 요리하는 법을 보여주는 방송, 이른바 ‘먹방’이다. 기본 시청률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먹는 정보에 대한 관심은 방송의 것만이 아님을 확인했다. 이 자리에서 오징어의 이모저모를 다룬 뒤 참으로 많은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학계와 수산업계, 국어사전 등이 제각각으로 다루고 있는 오징어 종류의 표준 명칭을 하루빨리 정비해야 한다’, ‘제주도의 반건조 오징어를 준치라고 하는데, 한치와 관계있는 것인가’처럼 명칭에 대한 의견이 많았다. ‘오징어 다리’와 ‘문어발’의 차이를 묻는 이도 있었다.
별생각 없이 말하고 무심히 듣던 연체동물의 다리(발)를 곰곰이 짚어 보았다. 오징어에는 ‘다리’, 문어에는 ‘발’이 붙는 게 자연스러웠다. ‘세(細)발 낙지’는 발이 가늘어서 나온 이름이다. ‘오징어+발’, ‘문어+다리’라 하면 안 되는 걸까. “오징어는 걷지 않고 물에 떠 헤엄친다. 문어는 발을 움직여 바닥을 기어 다닌다. ‘-다리’와 ‘-발’의 차이는 여기서 비롯한다”는 그럴듯한 주장도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오징어 다리’(58만9천개), ‘오징어 발’(62만8천개)의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문어발’(44만5천개), ‘문어 다리’(25만9천개)는 그렇지 않았다.(구글 검색) 마땅한 답은 없을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쓸 만한 게 나왔다.
사전은 ‘발’의 1번 뜻으로 ‘사람이나 동물의 다리 맨 끝 부분’, ‘다리’의 3번 뜻으로 ‘오징어나 문어 따위의 동물 머리에 여러 개 달려 있어, 헤엄을 치거나 먹이를 잡거나 촉각을 가지는 기관’을 제시한다. 뜻풀이에 기대어 정리하면 ‘오징어/문어/주꾸미/꼴뚜기…’에는 ‘다리’가 어울린다. 그렇다면 ‘문어발’은 무엇인가. 뜻풀이 ‘문어의 발처럼 여러 갈래로 나눔’은 ‘문어의 다리’를 적시해 설명하지 않는다.(표준국어대사전) ‘문어발’은 ‘문어발 확장’, ‘문어발 인맥’, ‘문어발배당’에서 보듯 비유적인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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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크스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첫 주 전적을 두고 각 팀의 희비가 엇갈린다. 겨울철 혹독한 담금질로 기대를 모은 팀, 최강 전력을 자랑하는 우승 후보, 뚜껑 열린 신생 구단의 실전 기록 분석은 경기장 밖의 또 다른 재미를 자아낸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제 기량을 다하기 위해 나름의 징크스를 피한다는 얘기는, 믿거나 말거나, 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은다.
메이저리그에는 오랜 역사에서 비롯한 유명한 징크스가 있다. 1945년 이후 이어져 오는 ‘염소의 저주’(시카고 컵스), 2004년 86년 만에 우승하면서 비로소 깨진 ‘밤비노의 저주’(보스턴 레드삭스)가 대표적이다. 일본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우승하면 경기가 나빠진다’처럼 특정 팀의 성적과 경제를 연관 짓기도 한다. ‘2년차 징크스’(소포모어 징크스, sophomore jinx)는 나라와 분야를 떠나 두루 쓰인다.
징크스(jinx)는 재수없는 것, 불길한 것, 불운을 가리키는 영어에서 왔다. ‘목을 뱀처럼 180도 비트는 고대 그리스의 흉조(jynx) 이름에서’, ‘나팔소리 때문에 모자를 떨어뜨린 기병대장 징크스를 노래한 가사에서’ 유래했다는 게 알려진 어원이다. 유력한 설은 뒤의 것이다. 히트한 노래 덕에 유명해진 ‘징크스’가 댄스곡, 드라마, 소설 제목에 쓰이면서 널리 알려졌고 미국 표준영어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영어위키)
지난주 한 방송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낡은 티셔츠를 입어야 잠이 온다”고 하니까 진행자가 “아, 징크스!”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어원과 일반적인 쓰임에 따르면 적절한 맞장구가 아니다. 국어사전 뜻풀이는 ‘재수 없는 일. 또는 불길한 징조의 사람이나 물건’이고 국립국어원은 이 표현을 ‘액(厄)’, ‘불길한/재수없는 일’로 다듬어 쓰기를 권한다. ‘경고 조치를 받은 사람이 당선된다는 속설에 비춰보면 경고 처분은 징크스보다 오히려 길조에 가깝다.’ 의사협회장 선거를 전망한 업계 전문지의 기사는 징크스의 뜻을 제대로 밝혀 쓴 셈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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