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씨, 맛있는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이렇게 주문하면 커피가 반값이 된다. 무표정하게 “아메리카노 한 잔” 하면 제값 다 치러야 하고, 무뚝뚝하게 “아메리카노”라고 짧게 말하면 벌금처럼 값이 더해져 정가의 1.5배를 내야 한다. 어떻게 주문하느냐에 따라 커피 값이 할인되고 할증되는 셈이다. 한 커피 체인점이 점원을 존중하고 배려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이벤트다. ‘커피 한 잔’(7유로), ‘커피 한 잔 부탁해요’(4.25유로),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부탁해요’(1.4유로)를 가격표에 써놓은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고객과 바리스타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따뜻한 말 한마디’ 행사의 반응이 꽤 좋다는 게 회사 쪽 분석이다. 체인점의 한 매장을 찾아 점원에게 물어보니 “모두 반값에 드렸다” 한다. 무뚝뚝하게 주문한 손님에겐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뜻을 담아 그랬을 것이다. 행사 취지가 잘 이뤄지면 이른바 ‘진상고객’은 줄어들고 가게 분위기는 밝아질 것이다. 그래서 좋다, 끝? 아니다, 접어 두었던 아쉬움이 더 커졌다. 관련 소식을 접하면서 이전부터 겪어왔던 불편했던 기억이 스멀대며 떠올랐기 때문이다. ‘커피 나오셨습니다’, ‘거스름돈이세요’ 따위의 사물을 높이는 얼치기 화법 탓이다.
김선우 시인은 “남발되는 높임 선어말어미 ‘-시-’의 문제는 비문이어서만이 아니다. 말 속에 교묘히 들어 있는 ‘비굴함’의 강제 때문이기에 당장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 높인다. 일리 있는 말이다. 손님을 불쾌하게 하는 점원의 어긋난 존대법은 넓게 퍼져 있는 구조적인 문제이고 ‘진상손님’은 어쩌다 나오는 개별적인 문제다. 이른바 ‘갑질손님’의 피해자는 동정과 공감을 얻지만 말 같지 않은 화법에 노출된 손님의 불편한 마음을 풀어낼 방법은 딱히 찾기 어렵다. ‘괴상한 높임말’의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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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②
새색시가 시아버지께 아침 인사를 했다. “아버지, 잘 잤나요?” 시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님’과 ‘시’를 붙이면 존댓말이 된다”는 신랑의 말을 듣고 밤새 연습한 새색시, 이튿날 환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아버님 대갈님에 검불님이 붙으셨어요.” 오래된 우스개다. 옛날이야기 속의 이런 일이 요즘에도 널려 있다. “커피 나오셨습니다”, “거스름돈 800원이십니다” 따위의 말이 꼭 그 짝이다.
‘사물 존대’를 꼬집은 기사는 2006년부터 등장한다. 그릇된 높임말의 역사가 십년 가까이 된 셈이다. 찻집이나 백화점 같은 곳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선어말어미 ‘-시-’의 오용은 “체납세가 있으십니다”처럼 공무원 사회에도 만연해 있다. “점원에게 잘못을 일러주는 것도 지쳤다”는 볼멘소리가 그치지 않지만, “사물 존대를 하지 않았다고 ‘무시당했다’며 항의하는 손님 탓에 조심스럽다”는 변명도 없지 않다.
해마다 ‘고객 응대 문안’을 국어전문상담소에 의뢰해 감수받는 백화점이 있다. 임직원을 대상으로 ‘우리말 바로쓰기 캠페인’을 펼치는 곳도 있다. 해당 백화점을 찾아보니 여느 곳보다 낫긴 하지만 ‘사이즈가 없으시다’ 같은 표현은 여전했다. 손님에게 바른 존대어를 쓰자는 취지와 현장의 상황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괴상한 높임말’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먼저, ‘소비자주권운동’을 들 수 있다. 손님들이 점원의 그릇된 높임말을 정중하게 바로잡아주는 것이다. 사물을 높이는 화법 탓에 소비자가 대접받지 못하는 풍토를 바로잡기 위한 시민운동이다. 여의치 않으면 불매운동을 할 수도 있겠다. 커피 체인점 등의 ‘고객 응대 화법’을 다듬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방법도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업체는 ‘표준 언어 예절’을 지키도록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 앞서는 것이 화법 교육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반듯한 우리말을 하는 게 상식인 사회가 되면 절로 이루어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