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성 대통령이자 ‘부녀(父女) 대통령’이 취임했다. 33년 만에 청와대로 들어간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곳의 주인은 모두 10명이었다. 전두환(11·12대), 이승만(1·2·3대), 박정희(5·6·7·8·9대)처럼 연임한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다. 11번째 주인이 된 박근혜 대통령 취임에 즈음해 한 통신사가 역대 대통령 취임사에 등장한 낱말을 헤아려 담아 ‘낱말 구름’(word cloud)을 만들었다. ‘국정 운영의 청사진, 정권 목표를 담은 시대정신의 산물’(ㅇ뉴스)이라는 취임사를 분석해 만든 ‘낱말 구름’을 보니 그럴듯했다.
역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말은 ‘국민’이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대통령이 된 6명(13~18대)은 물론 9대 박정희 대통령도 ‘국민’을 ‘역사’, ‘민족’ 앞에 세웠다. ‘새(정부)’(5대, 5·16쿠데타 뒤 첫 집권)를 강조하며 시작한 그의 취임사를 살펴보면 ‘시월유신’을 앞둔 7대 취임식에서는 ‘나’(18번)를 ‘평화’, ‘통일’보다 많이 말했다. 12대 전두환 대통령도 ‘본인’(31번)을 ‘국민’(30번)보다 많이 썼다. 이처럼 취임사를 곱씹으면 그 시대 상황을 짚어낼 수 있다. 대통령 자신을 ‘나’와 ‘본인’, ‘저’ 등으로 가리킨 것을 돌아보는 것은 그래서 의미 있을 것이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나에게 치하하러 오는 남녀 동포가…”에서처럼 ‘나(내)’로 표현한 이래 ‘나’는 9대 박정희 대통령 취임사에 이르기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10대 최규하 대통령 취임사에서 ‘본인’에게 자리를 넘기고 사라졌던 ‘나’는 11대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되살아난다. ‘본인’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를 문어적으로 일컫는 말’(표준국어대사전)이다. 국민 앞에 ‘자기를 낮추어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인 ‘저(제)’가 취임사에 등장한 것은 13대 노태우 대통령 때이다. 표현에 한정되긴 하지만, ‘군림하는 나’에서 ‘(국민을) 받드는 저’로 바뀌는 데 40년이 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