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회피 / 기피
여름엔 햇빛을 피하고 싶다. 덥기도 하지만 피부 노화를 앞당긴다는 자외선에 노출되고 싶지 않아서다. 이런 날엔 파란 옷을 입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청바지가 흰 셔츠에 비해 자외선 차단 효과가 100배나 높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엇인가를 피하는 것을 '기피'나 '회피'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기피(忌避)'는 꺼리거나 싫어해 피한다는 뜻으로 "자외선 차단제의 유분이 여드름을 악화시킨다고 여겨 기피하는 사람도 있지만 발라 주는 게 좋다"와 같이 쓰인다. '회피(回避)'는 몸을 숨기고 만나지 않거나, 일하기를 꺼려 선뜻 나서지 않거나, 꾀를 부려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내수성을 갖춰 땀이나 물에 잘 지워지지 않는다고 광고하는 자외선 차단제의 기능이 입증된 거냐고 묻자 회사 측은 답변을 회피했다"처럼 사용한다.
두 낱말 모두 어떤 상황이나 일을 피하는 것이지만 어감엔 다소 차이가 있다. "요실금을 방치할 경우 외출을 꺼리는 것은 물론 대인 관계를 회피해 나중엔 노인성 우울증 같은 정서적 문제까지 올 수 있다" "아토피성 피부염은 진물과 흉한 상처로 인해 대인 기피 현상까지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다"에서 대인 관계를 '기피'하는 것과 '회피'하는 것은 말맛이 다르다.
'회피'가 앞으로 나서지 않고 뒤로 빼는 듯한 느낌으로 쓰였다면 '기피'는 적극적으로 피한다는 느낌을 준다. '기피'가 '회피'보다 좀 더 적극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