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상(上)' 띄어쓰기
우주에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지 못한다. 컵을 기울여도 물이 입 안으로 쏟아지지 않고 허공에 방울져 떠다닌다. 사실상 컵에 따르는 일조차 힘들다. 총처럼 생긴 도구로 물을 입속에 뿌리거나 빨대로 마실 수밖에 없다. 우주 공간에선 '지구 상'에서와 같은 중력이 거의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구 위'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지구 상'이란 표현을 쓴다. 이때 많은 사람이 '상'을 앞말에 붙여야 할지, 띄어야 할지 망설인다. 어떤 게 맞을까?
"호주에는 지구 상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생물 수십 종이 산다" "지구 상의 물은 97%가량이 해수로 이뤄져 있다"처럼 '상(上)'이 물체의 위나 위쪽을 뜻하는 말일 때는 앞의 단어와 띄어 쓰는 게 맞다. "주요 도로 상의 통화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도로 상의 각종 불법행위를 단속한다" 등에서의 '도로 상'도 마찬가지다. '하(下)'와 반대되는 개념이므로 띄어야 한다.
그러나 '상(上)'을 모두 띄어 쓰는 건 아니다. "인터넷상의 선거법 위반 사례" "낙뢰에 따른 통신상의 오류" "전설상의 동물로 알려진 이무기"와 같이 '하(下)'와 반대되는 의미가 아니라 '구체적 또는 추상적 공간에서 갖는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사로 사용됐을 경우에는 앞말에 붙여 쓴다.
'관계상' '미관상' '사실상' '외관상' '절차상' '법률상'처럼 일부 명사 뒤에서 '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사로 사용할 때도 붙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