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건넛방, 건넌방
어릴 적 시골엔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에서 먹이를 쪼는 병아리 떼를 볼 수 있는 한옥이 많았다. 그러나 요즈음은 칸칸이 가로막힌 방으로 구성된 아파트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건넌방'이 없어지고 '건넛방'만 있는 세상이다.
'건넌방'과 '건넛방'은 둘 다 건너편의 방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둘은 의미가 약간 달라 쓰임에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건너에 있는 맞은편 방을 가리킬 때 '건넛방'이라 한다. "옆방은 막내딸 보고 쓰라고 하고 건넛방은 첫째 보고 쓰라고 합시다" "수학여행에서 우리들은 운이 나쁘게도 선생님 건넛방을 배정받아 계획했던 일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와 같이 쓰인다.
'건넌방'은 건너편에 있는 방이란 뜻을 가지고는 있으나 '안방에서 대청을 건너 맞은편에 있는 방'을 가리키는 말로 '건넛방'보다 좀 더 특수화된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건넌방'은 한옥과 같이 대청마루가 있는 집에서만 가능한 말이라 할 수 있다.
'건넌방'은 옛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데,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라는 소설에서는 "그는 도둑놈처럼 조심스럽게 바로 건넌방 뒤 미닫이 앞 담에 서서 주저주저하더니 담을 넘었다", 염상섭의 '동서'라는 소설에서는 "남편은 들이닥치는 길로 한마디 하고는 건넌방으로 들어간다"와 같이 쓰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