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 와라
ㄱ. 얘, 늦었다. 빨리 가라.
ㄴ. 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의 시, 껍데기는 가라)
ㄱ의 '가라'와 ㄴ의 '가라'는 형태는 같지만 쓰임의 차이가 있다. 앞의 것은 입말로서 '해라'체이고 뒤의 것은 글말로서 '하라'체이다. 그런데 ㄱ의 '가라'는 '가거라'로 고쳐 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한다. 학교 문법에서는 '가다'를 '거라' 불규칙 동사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지금 빨리 와라."의 '와라'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오다'는 '너라' 불규칙 동사이므로 "지금 빨리 오너라."로 고쳐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라' 또는 '너라' 불규칙은 글말이 아닌 입말에서는 이미 그 힘을 잃어 가고 있다. '가거라, 오너라'는 권위적 상하 관계에서나 제한적으로 쓰일 뿐, 대부분의 화자들은 '가라, 와라'를 더 즐겨 쓰고 있다. 특히, 어미 '-거라'는 '가다, 자다' 등의 극히 한정된 동사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한 동사와 결합한다는 점에서 더 이상 불규칙 현상으로 보기 어렵게 되었다. 사극이나 역사 소설에서 빈출하는 '앉거라, 듣거라, 섰거라, 닥치거라, 참거라, 읽거라'의 '-거라'는 불규칙 활용이라기보다는 '-아라/어라'의 권위적 표현에 가깝다.
안상순(사전편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