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숙하다, 어수룩하다
ㄱ. 어리숙한 시골 노인
ㄴ. 어수룩한 시골 노인
ㄱ과 ㄴ 가운데 어느 쪽이 자연스러운가? 대부분 둘 다 자연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둘 다 모두 바른 말인가? 표준어 규범은 '어리숙하다'를 비표준어로 다루고 있다. 이는 두 말이 완전 동의어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문장을 보자.
ㄷ. 세상이 그렇게 어수룩한 줄 알아?
ㄹ. 그 팀은 수비가 어수룩하기 짝이 없다.
위의 경우에는 '어수룩하다'를 '어리숙하다'로 바꾸기 어려워 보인다. ㄱ과 ㄴ의 경우에는 두 단어가 '사람이 때 묻지 않고 숫되다'의 의미를 공유하고 있는 반면, ㄷ과 ㄹ의 경우에는 '어수룩하다'만이 '사람 이외의 대상이 호락호락하거나 허술하다'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한편, ㄱ과 ㄴ의 경우에도 찬찬히 뜯어보면 두 말 사이에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어리숙하다'는 어리석음의 어감이, '어수룩하다'는 순박함의 어감이 두드러진다. 가령, "난 내가 너무 어리숙했다는 걸 깨달았다"와 "우리 선생님은 어수룩하지만 인간미가 넘치신다"의 경우, 두 단어를 서로 맞바꾸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 두 말은 완전 동의어가 아니므로 복수 표준어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상순(사전 편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