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염, 나염
패션도 시대를 반영한다. 외환위기가 닥친 그해 봄은 검정 옷이 유행했다. 얇아진 지갑에 맞춰 실용성이 강조된 결과다. 그러나 불황에도 화려한 옷이 유행할 때가 있다. 우울한 시대일수록 낭만을 추구하는 소비자의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2005년 패션 경향을 보여주는 '서울컬렉션'에서도 꽃무늬가 '나염'된 천 등으로 만든 화려한 분위기의 패션이 주류를 이뤘다. 우리 경제의 희망 행진곡은 패션계에서부터 울려퍼질 모양이다.
섬유나 패션 기사에서 '나염'이란 말을 자주 접한다. "유명 브랜드의 손수건ㆍ넥타이 등 각종 직물류는 나염에 따라 상품의 질이 좌우되기도 한다"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나염 기술자로 '색채의 마술사'로 불린다" 등으로 쓰는 일이 많다. 일상에서도 나염 스카프, 직물 나염이라고 말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 쓰고 있는 말로 '날염'이라고 해야 한다. '날염'은 직물에 부분적으로 착색해 무늬가 나타나도록 염색하는 기술이다. '날'자는 도장을 찍는 것을 뜻하는 '날인(捺印)'과 한자어가 같다. 즉 누르다.찍다의 '날(捺)'과 물들이다의 '염(染)'으로 구성된 한자어다. 발음은 [나렴]으로 나지만 '날염'이라고 써야 한다. 모임 등의 비용으로 여럿이 얼마씩 돈을 내어 거두는 것을 뜻하는 '추렴'이 '출렴(出斂)'에서 변한 것처럼 'ㄹ탈락현상'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추렴에서 ㄹ이 탈락한 것은 ㄹ이 겹치기 때문이다. 날염의 경우 ㄹ이 겹치지 않는다. '나염'은 근거 없이 'ㄹ'을 탈락시킨 것으로, 일반인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