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파와 외도
입추와 말복을 지나며 유별났던 더위도 한풀 꺾이고, 선선한 밤공기에선 약하나마 가을이 느껴진다. 가을(수확을 뜻하는 순 우리말)은 풍요의 계절이지만, 가을을 뜻하는 영어 '폴(fall·잎이 시들어 떨어짐)'에서 보듯 쓸쓸함이 스며드는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날 낙엽이 지는 호수에 일렁이는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면 어딘지 외로움이 느껴진다. 그 잔물결이 추파(秋波)다. 그리고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은근히 보내는 눈길을 '추파'라고 한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현상이다. 미인의 맑고 아름다운 눈길을 '추파'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남의 환심을 사려고 아첨하는 태도에까지 '추파'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표를 얻기 위해 ○○지역에 끊임없이 추파를 보내고 있다'에서처럼 좋지 않은 투로 쓰고 있다.
이러한 의미 변화는 바르지 않은 길을 뜻하는 '외도(外道)'에서도 일어난다. '외도'는 아내나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쓰이는 단어로, 당연히 좋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요즘은 본업을 떠나 다른 일을 하는 것에까지 '외도'라는 말을 쓴다. '탤런트 ○○○ 영화 외도' '정치 외도 ○○○ 탤런트 복귀' 등 나쁠 게 없는 일에 '외도'를 사용한다. 근래 나온 사전은 현실을 반영, '추파' '외도'에 이 같은 의미를 추가했다.
언어도 생명체와 같아 생겨나고, 변화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단어처럼 반대에 가까운 뜻까지 껴안음으로써 의미에 혼란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 '추파'와 '외도'를 본래 뜻대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