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각득기소(各得其所)라는 말이 있다. 사회 구성원 하나하나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일 때가 많으니 적재적소(適材適所)와 비슷한 뜻이기도 하다. 방송사의 피디(PD)는 피디 일을, 아나운서는 아나운서의 일을 해야 한다. 기자와 카메라 감독, 세트 디자이너와 시지(CG) 어루만지는 이들은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게 ‘각자의 몫’이다.
근데 요즘 제 몫을 제 뜻대로 제대로 못하는 이들이 있어 안타깝다. 통신사 기자는 한데 나와 농성하고 있고, 방송사 피디와 카메라 감독과 시지 디자이너는 거리를 누비며 유인물을 뿌리고 있다. <문화방송> 노조는 파업 100일에 즈음하여 ‘자선 주점’을 준비하고 있고, 취재처에 발 들이지 못하는 <국민일보> 기자는 생활고 해결을 위해 쇠고기를 팔고 있다.
‘국민일보 파업 기자들의 횡성 가는 길’(<한겨레> 4월21일치)을 읽고 난 뒤 ‘어쩌면 아나운서도 푸줏간을 차려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고기 부위 이름을 떠올렸다. 부위를 떠올리며 하나씩 곱씹어 보니 ‘이름 참 맛있게 지었다’ 싶었다. 등심은 ‘등-심’이고, 안심은 ‘안(內)-심’이다. 소 등뼈에서 발라낸 연한 고기, 소갈비 안쪽에 붙은 살이라 각각 그렇게 부른다. 우둔살은 소 둔부에서 베어낸 것이니 쇠볼깃살이다. 방망이처럼 기다랗게 소 볼기에 붙어 있는 살코기는 홍두깨살이다. 마치 옷감을 감아 다듬질할 때 쓰던 홍두깨 방망이 모양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양지머리뼈 한복판에 붙은 차돌박이는 희고 단단함이 마치 차돌 같아 그렇게 부른다. ‘다리 사이’를 뜻하는 ‘샅’에서 온 게 ‘샅에 고기’ 곧 사태이다. 사태는 다시 앞사태, 뒤사태로 나눠 부르는데, 아롱사태처럼 야릇한 이름도 있다. 뭉치사태 속에서 아롱아롱하게 보이기에 아롱사태가 되었단다. 핏물 밴 쇠고기에서도 아롱거림을 찾아낸 조상들의 안목이 놀랍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