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산 구두에 흠집이 있어서 백화점으로 바꾸러 갔다. 가까이 있는 점원에게 구두 가게의 위치를 물었다. 점원이 답했다. “구두 매점은 4층에 있으십니다.” 4층에서 해당 상표의 매점을 찾아 다른 구두를 골랐다. 셈을 치르는데 새로 고른 구두가 먼저 산 구두보다 값이 싸다고 했다. 점원이 말했다. “돈이 남으십니다.”
좋은 언어 관행인지 아닌지는 따로 따져보아야겠으나, 우리말에는 복잡한 존대법이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면서 이 부분을 매우 어려워한다고 한다. 백화점 두 점원의 말은 흡사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외국인이 하는 말처럼 들린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존대법을 엄격히 지키라고 강요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천을 거듭하고, 우리의 전통적인 존대법은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존대법에 ‘압존법’이라는 것이 있다. 문장의 주체가 말하는 이보다는 높지만 듣는 이보다 낮을 때는 주체를 높이지 않는 어법이다. “사장님, 김 전무가 입원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김 전무님’이라고 하면 어법에 어긋난다. 하지만 압존법은 현실 언어에서 많이 흔들리고 있다.
한때 ‘사물존대’라는 말이 있었다. “사모님, 눈이 참 예쁘십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눈’은 존대 대상이 아니지만 ‘사모님’의 눈이기에 높이는 것이다. 이런 말투도 이젠 언어사회가 수용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백화점 점원의 말투는 그런 것도 아니다. 백화점에서 손님을 응대하는 언어교육을 다시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