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텔레비전 뉴스 진행자가 태풍이 쓸고 지나간 지역의 수재민에게 전화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수재민에게 “안녕하세요”라니, “많이 힘드시죠”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제 “안녕하세요”는 ‘아무 탈 없이 편안하다’(安寧)라는 한자의 뜻에서 벗어나 어느 때, 어느 상황에서도 쓰이는 인사말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신문 칼럼에서도 재미있는 얘기를 보았다. 저녁 시간에 이웃에 사는 영국인에게 “굿모닝” 하니까, 그 영국인도 “굿모닝” 하더라는 것이다. “그 영국인은 굿이브닝” 할 것이었지만 틀리게 말한 사람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려고 “굿모닝” 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인은 시간을 나누어 다른 인사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한국인은 언제 어디서나 “안녕하세요” 한마디면 모든 인사가 된다. 그러나 우리도 시간을 나누어 다른 인사말을 했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아침 일찍 어르신들을 만나면 “편히 주무셨습니까”, 조금 더 지나서는 “조반 잡수셨습니까”, 오후에는 “점심 잡수셨습니까”, 저녁에는 “저녁 잡수셨습니까”, 밤에 헤어질 때는 “안녕히 주무십시오” 했다. 이만큼 철저한 시간 나눔의 인사가 또 있을까? 그 시절 우리의 인사는 말로나마 상대의 잠자리와 끼니를 챙기는 일이었다. 이제 우리도 그런 걸 챙기는 형편에서 벗어났기에 인사에서도 그런 말이 사라진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