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와 멍에
<워낭소리>라는 영화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사전은 ‘워낭’을 ‘마소의 귀에서 턱밑으로 늘여 단 방울, 또는 마소의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로 설명하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한우’라고 하면 모두 최고급 쇠고기로 인식한다. 그러나 한우는 전통적으로 육우가 아니라 역우(役牛)였다. 쟁기로 논밭을 갈고 무논에 써레질을 하는 일이 모두 소의 몫이었고, 수레를 끄는 일도 소나 말이 맡았다.
“민주화 운동에는 도움됐지만 민주화 이후엔 굴레와 멍에” 신문 기사의 부제다. 소에게는 ‘굴레’니 ‘멍에’니 하는 장신구(?)들을 많이 채웠다. 힘센 소를 쉽게 부리기 위해서 제일 먼저 코뚜레를 뀄다. 소의 두 콧구멍 사이를 뚫은 나뭇가지를 동그랗게 묶은 것이 코뚜레다. 여기에 고삐를 맨다. 고삐를 잡아당기면 아무리 힘센 소라도 당기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소의 머리와 목을 감아 고삐에 걸쳐놓은 것이 굴레다. 소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서 ㄱ자 형으로 생긴 나무를 소의 목에 걸어 수레나 쟁기에 밧줄로 이은 것이 멍에다. 이 모든 것이 소에게는 형벌일 수밖에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소의 힘을 빌려 농사를 짓고 짐을 날랐다.
요즘에 와서는 이런 말들이 구속, 속박의 의미로 쓰인다. 하긴 16세기의 인물인 서익이 벼슬을 그만둔 것을 “녹초청강상에 굴레 벗은 말이 되어”라고 표현한 걸 보면 그 시대에도 이미 이런 뜻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우재욱/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