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듯이 말도 변화를 거듭한다. <용비어천가>나 <두시언해> 등의 고전을 읽어보면 몇백 년 전의 우리말을 알아들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단어의 기원과 유래를 연구하는 언어학 분야를 어원론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말 ‘기와’(瓦)는 15세기에는 ‘디새’였다. ‘디새’가 ‘기와’로까지 변화해온 과정을 추적해 보면 복잡하기 짝이 없다.
“MB정부 ‘정규직 전환’ 늑장…법개정 눈치보다 해고 칼날” 신문기사 제목이다.
여기서 ‘늑장’은 일견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쉽게 연상되는 단어는 ‘늦다’인데, ‘늑’이라는 형태가 어떻게 생겨났을까. 아마도 쉽게 연상되는 ‘늦다’에서 답을 구하려니 자꾸 미로로 빠져드는 듯하다. 대부분의 사전은 ‘늦장’과 ‘늑장’을 동의어 또는 유의어로 설명하고 있지만, 어떤 사전은 ‘늑장’은 ‘늦장’이 변한 말이라고 했다가 개정판에서는 지웠고, 또 다른 사전은 ‘늑장’만 인정하고 ‘늦장’은 틀린 말 또는 방언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늑장’의 어원을 ‘느긋하다’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표준국어대사전은 ‘늑하다’를 ‘느긋하다’의 준말로 올려놓았다. ‘늑하다’와 연결해 보면 일단 ‘늑’의 정체는 잡힌다. 당장 할 일이 있는데, 시간도 그리 넉넉지 않은데 짐짓 여유를 부리면서 느긋한 척하는 데서 온 말이 아닐까.
우재욱/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