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입국, 몰래 출국
‘몰래’는 동사 ‘모르다’에서 파생된 부사다. ‘모르다’의 어간 ‘모르’에 접미사 ‘-애’가 이어졌다. 다시 [ㄹ] 소리가 덧나는 설측음화 현상이 표기에 반영되어 ‘몰래’로 되었다. ‘몰래’가 부사 외에 다른 품사처럼 쓰이는 예는 없었다.
“국경 산악지대를 통한 사람과 물자의 몰래 입국, 몰래 출국의 길이 크게 열려 있다.” 이란의 지정학적 상황을 다룬 신문기사의 한 구절이다. 기사에서는 ‘몰래 입국’, ‘몰래 출국’이라고 해서 ‘몰래’가 관형사처럼 쓰이고 있다. 언뜻 ‘입국’ 또는 ‘출국’을 ‘입국하다’ 또는 ‘출국하다’라는 동사의 어근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몰래 출국의’라고 해서 조사 ‘의’까지 붙여 놓았으니 꼼짝없이 명사일 수밖에 없다.
‘몰래’가 관형사처럼 쓰인 것은 ‘몰래카메라’가 처음인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대단한 인기를 끌면서 ‘몰래카메라’라는 말이 어법을 뛰어넘어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고, 대중의 힘을 바탕으로 이제는 사전에까지 버젓이 올라 있다. 우리말 부사 ‘몰래’와 동작성도 없는 외래어 명사 ‘카메라’가 불륜을 저질렀으나, 아무런 비판이나 저항 없이 혼인신고까지 마친 셈이다. 차라리 ‘스파이 카메라’라고 했으면 말의 갈래를 정리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요즘은 단속을 위한 ‘감시카메라’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몰래 입국’, ‘몰래 출국’이라는 말을 신문에서 스스럼없이 쓰는 걸 보면 ‘몰래’를 관형사처럼 쓰는 예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우재욱/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