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도 경제 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다. 구개음화나 자음동화 등의 음운현상도 어려운 발음을 쉽게 하기 위한 방편이다. 준말을 많이 만들어 쓰는 것도 그런 방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준말은 주로 한자어에서 만들어졌지만, 근래에 와서는 ‘디카, 몰카’ 등에서 보듯이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어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준말이 많이 쓰인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 조금 걸어 내려가면 엄청 큰 집 옆에 엄청 큰 나무가 있습니다.” 신문에 실린 에세이의 도입부다. ‘엄청’이 부사로 쓰이고 있다. 오래된 사전들을 찾아보면 ‘엄청나다’는 형용사로 올라 있지만 ‘엄청’은 올라 있지 않다. 이것은 ‘엄청’이 말밑이 되어 ‘엄청나다’ 또는 ‘엄청스럽다’라는 형용사로 파생된 것이 아니라, 거꾸로 형용사가 줄어들어 부사로 쓰이고 있음을 일러준다.
이렇게 줄어든 부사들이 상당히 많이 쓰이고 있다. ‘엄청, 무지, 완전, 본격, 강력, 훨’ 등은 사전이 어떻게 풀이하든 실생활에서는 부사로 쓰이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중 ‘엄청’, ‘무지’만 부사로 올려놓았다. 대중의 말살이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완전, 본격, 강력’은 명사로만 올려놓았고 ‘훨씬’의 준말인 ‘훨’은 아예 올려놓지 않았다.
그러나 사전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완전, 본격, 강력, 훨’ 등도 머지않아 부사로 사전에 오를 것 같은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