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랑이
지난주에 동의어를 설명하면서 “말은 본뜻에다 다른 뜻을 더하기도 하고 아예 다른 뜻으로 옮겨가기도 한다”고 했다. 어느 시점에서 어느 낱말의 형태와 의미가 특정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형태와 의미가 바뀌기도 한다는 말이다. ‘어리다’는 원래 ‘어리석다’는 뜻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뜻의 말이 되었다. 이화·동화·유추·오분석 등의 언어현상이 이런 변화를 일으킨다. 때로는 비유·상징 등의 수사(修辭)가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복지부 출입 기자와 잠시 실랑이를 벌였다.’ 신문 기사에서 잘라온 구절이다. ‘실랑이’는 본래 ‘실랑이질’로서 남을 못살게 굴어 시달리게 하는 짓이란 뜻이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남을 괴롭히는 것이 실랑이였다. 양쪽이 서로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옥신각신하는 데는 ‘승강이’라는 말을 썼다. 기사 내용을 보면 출입기자와 벌인 것은 실랑이가 아니라 승강이였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은 ‘실랑이’에 ‘승강이’의 뜻을 보태놓았다. 두 말을 유의어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전은 언어현상에 대해 다분히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언어대중이 많이 쓰는 말도 사전적 해석으로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사람이 그렇게 쓴다면 사전도 물러설 수밖에 없다. ‘말 나고 문법 났지, 문법 나고 말 났나’ 하는 빈정거림이 이럴 때는 설득력을 갖게 된다.
우재욱/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