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말 ‘겁나게’가 전라도 사람임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표지라고 한다면, ‘억수로’는 ‘아주’ 혹은 ‘매우’의 뜻을 갖는 전형적인 경상도 고장말이다. “술이 억수로 취해가지고 잘 걷지도 못하데예.”(<토지> 박경리) “박형, 차말로 신경 억수로 씌기 만드네.”(<겨울 미포만> 방현석) ‘억수로’는 ‘물을 퍼붓듯이 세차게 내리는 비’의 뜻을 갖는 ‘억수’와 토씨 ‘-로’가 결합하여 부사로 굳어진 말이다.
‘억수로’는 비가 내리는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퍼붓다, 쏟아붓다, 내리다, 쏟아지다’ 같은 말과 결합할 때는 여전히 명사 그대로의 뜻을 갖는다. “비가 아무리 억수로 쏟아져도 송장을 방으다 썩흘 수 있냐?”(<한국구비문학대계> 전북편) “한밤중에 억수로 퍼붓는 비발 속을 헤치고 이 기대로 향해 달려간 날을 백으로도 헤아릴 수 없다.”(<새일터로> 박성호(북녘 작가))
‘억수’는 한자어 ‘악수’(惡水)가 ‘악수>억수’와 같은 변화를 겪은 것인데, ‘악수’와 ‘-로’가 결합한 ‘악수로’는 ‘억수로’와 같이 ‘매우’ 혹은 ‘아주’의 뜻으로는 쓰이지 않고 원래의 뜻으로만 사용된다. “비야, 비야, 올 테면 악수로 퍼부어라, 주성을 쓸어 가게.”(<변방에 우짖는 새> 현기영) “구름이 연해지더니 각중에(갑자기) 비가 악수로 쏟아지더니마…”(<한국구비문학대계> 경남편) “마 소나기가 악수로 따롸가 도저히 피신할 곶이 없어.”(위 책 경북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