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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름질
언어예절
문무(文武)를 보통 붓과 칼로 견준다. 실제로는 붓과 칼이 같이 놀 때가 많다. 말글을 부려 쓴다는 일이 칼질·난도질·가위질 그 자체인 때가 많은 까닭이다. 이름을 짓고 사물을 정의하고 판단하는 일이 칼질이자 마름질이며, 살을 쏘는 일과 닮았다.
어떤 사안을 두고 재단한다거나 마름질한다고 하면 옳고 그름을 헤아리고 이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걸 이른다. 재고 자르고 깁고 하는 바느질꾼·재단사의 일을 빗댈 수 있다. 찧고 까불고 이러쿵저러쿵하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말에 가시(뼈)가 들었다, 화살을 날린다, 날이 섰다, 말이 날카롭다고 하는 비유들에서도 붓과 칼이 같이 놂을 볼 수 있다.
남의 얘기를 듣지 않거나 두루 살피지 않고 속내를 모르는 처지에서 올바른 진단·판단을 하기 어렵다. 하물며 부드럽고 화합하는 말을 어떻게 바라랴.
마름질에도 틀(본)이 있어야 하고, 잘라낸 베를 대어 깁는 일도 중요하다. 특히 이치를 세우고 엮는 논문·재판·해석 들에서 쓸모 있는 방식이지만, 일상 대화에서 각별히 따져서 확인할 때를 빼고서는 함부로 마름질하기를 삼갈 필요가 있다. 판단이 그릇될 수 있는데다, 자칫 오해나 감정을 사기 쉬운 까닭이다. 바라지도 않는 자리에서 배 놔라 감 놔라 하는 식의 간섭이나 훈수가 되기 십상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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