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창파에 조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백로가)
포은 정몽주 선생의 어머니께서 아들을 백로에 비기고 상대 무리를 까마귀에 비겼다. 썩 풍자적이다. 포은을 기리고자 세운 영천 임고서원, 오백년 넘은 은행나무는 잎은 다 졌으나 드높은 기상은 예나 다르지 않다. 해오라기에는 알락해오라기와 덤불백로가 있다. 앞엣것은 황갈색 해오라기를 모두 이르고, 뒤엣것은 주로 미주 지역에 사는 텃새로 작은 해오라기를 두루 이른다.
‘백로’는 우리말로 ‘해오라기’다. 경상도 말로는 ‘해오라비’다. 백로의 백(白)과 해오라기의 ‘해’는 같다. ‘해맑다-해끔하다-해사하다-해쓱하다-해말쑥하다-해반드르르하다 …’에서 ‘해’는 분명 희다는 뜻을 알맹이로 한다.
그럼 ‘오라기’는 무엇인가? 더러 해오라기를 ‘해오리’라고도 부른다. 아주 시사적이다. ‘오리’의 짜임은 ‘올+이’로서 오리(鴨)와 같은 말로 보면 좋을 것이다. 물 위에 떠다니며 물고기를 잡아먹고, 때로는 하늘 높이 날아 고고한 자태를 드러낸다. 옛말로는 ‘하야로비’(鷺·훈몽자회), ‘하야루비’(백련초해), ‘해오리’(청구영언)다. 이 가운데 가장 해오라기와 가까워 보이는 게 ‘해오리’로, 준말로 다루기도 한다. 세밑을 맞아 겉 희고 속 검은 일은 없는지 되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