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표기에 ‘佐’(도울 좌)가 적잖이 쓰였다. 말끝에서는 ‘재’, 앞이나 중간에서는 ‘자’로 읽는다. 사람이름 ‘가재·자귀·오자미·자태’에 ‘佐’가 쓰였다. ‘자이덕/재덕’은 伊(이)를 더하여 ‘佐伊德’으로 적었다. 오자미는 콩·팥 따위를 넣고 기운 헝겊주머니다. 서울의 북가좌동·남가좌동은 본디 ‘가재울’(←가재+골)로, 한자로는 ‘加佐洞’(가좌동)이라 하였다.
한자로 적은 이름 ‘上佐·相佐’(모두 상좌)는 <사리영응기>(김수온)의 ‘샹재’에 해당된다. 어버이나 ‘할어버이’(조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모시는 맏아들을 ‘맏상제/맏상주’라고 부른다. ‘큰샹재·쟈근샹재’와 같은 이름을 보면 ‘큰샹재’는 요즘의 맏상제다. ‘상제’(喪制)는 ‘장례 제도’와 ‘상주’를 이르는데 ‘샹재’의 소릿값을 보고 재해석하여 한자로 ‘상제’라 한 듯도 하다. 절집에서 ‘상좌’(上佐)는 스승을 이을 첫번째 되는 스님, 불도를 수도하는 행자를 이른다. 두만강 우디거 족에 ‘샹자’가 있었는데 ‘샹재’와 멀지 않다.
1488년, 가뭄이 심하자 임금(성종)은 사람들의 원한부터 풀어주라 하였다. 형(고문)을 받고 옥에 갇히는 것이야말로 더한 원한이 없다며 죄 없이 오래 갇힌 ‘번재’(番佐)를 풀어주라 하였다. 번재는 어루동(어우동)의 딸이다. 함께 지내던 외할머니는 이미 누군가에게 목숨을 빼앗긴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