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문종 1년(1451년), ‘모디리’(毛知里)가 허안석의 아들인지 아닌지 밝혀야 한다고 사헌부에서 임금께 아뢰었다. 모디리가 허안석의 아내 이씨에게 입적된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재산을 노리는 것이므로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고 하였다. 임금은 일이 비록 명백하다 하더라도 강상에 관한 일을 어찌 채찍을 들어 밝히겠느냐며 자세히 물어보라 하였다.
‘모디리’는 ‘모딜다’(모질다)에서 비롯되며, 어찌씨로는 ‘모질게’의 뜻도 있다. 문종 임금은 나중에 모디리의 출생을 밝히라 명하였다. “모디리 어미는 바로 이씨 부인의 계집종이니 자식의 소송으로 친어머니에게 해가 미치는 것은 도리어 어미·아들의 관계를 해치므로 죄를 주지 마소서”라고 사헌부에서 아뢰었다. 어미가 노비면 자식도 노비가 되던 시절, ‘모디리’는 어쩔 수 없이 양인 어머니 소생으로 입적된 모양이었다.
‘모디리’와 비슷한 이름에 ‘모디이’도 있다. ‘모딘/모진’이 밑말로 쓰인 이름에 ‘모딘이/모진이·모딘가/모딘가이/모진개·모진쇠’도 있다. 오도리족 이름에도 ‘모디리·모딘이’가 있다. ‘모디리’는 뒤에 ‘모질이’로 바뀌었다. 요즘 ‘모지리’는 ‘머저리·모조리·매우’의 뜻으로도 쓴다. 본디 모질게 살아남으라는 염원이 깃든 이름인 ‘모디리’와는 매우 동떨어진 말뜻이 그 자리에 따라붙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