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높고 말이 살찐다는 가을이 완연하다. 책읽기에다 운동이나 휴식하기도 좋은 철이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져 장롱에 걸어 둔 긴소매 옷을 하나둘 꺼내 입게 된다. 머잖아 눈발 날리는 겨울이, 또 봄, 여름, 가을이 스쳐갈 터이다.
가을에 제격인 옷으로 ‘카디건’(cardigan)이 있다. 털로 짠 얇은 겉옷의 하나로, 앞자락이 트여 단추로 채우게 돼 있어 가을 날씨와 분위기에 어울린다. ‘카디건’을 우리는 ‘가디간’ 또는 ‘가디건’으로 일컫는데, 아마도 일본식 발음 ‘가디간’(カ―ディガン)을 받아들인 결과로 보인다.
‘카디건’(cardigan)은 본디 ‘샌드위치’(sandwich)처럼 서양 사람의 이름이었다. 1853년 제정 러시아가 흑해로 진출하고자 터키·영국·프랑스·사르디니아 연합군과 벌인 크림 전쟁 당시 이 옷을 고안하고 즐겨 입은 영국의 카디건 백작(Earl of Cardigan)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재빨리 입고 벗을 수 있고, 걸치면 따뜻하기도 해서 카디건은 매우 빠른 속도로 퍼졌다고 한다. 목숨이 위태로운 전쟁터에서 실용적이지 않으면 쓸모가 없기에 그랬을 것이다.
군용으로 개발된 물품이지만 지금 카디건은 군인이 입지 않는 대신 인기 있는 패션 상품이 되었다. 크림 전쟁 당시에 이럴 것을 미리 알았을까. 이처럼 세상에는 미리 알 수 없는 것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면 사는 재미는 매우 줄어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