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도 떨어져 지내던 친지들을 만나 서로 정을 확인하고 두텁게 쌓는 계기가 됐을 줄 안다. 이렇듯 명절은 ‘지퍼’가 양쪽 천이나 가죽을 잘 물리게 하듯 가족과 친지를 단단히 엮는 구실을 하는 것 같다.
인류의 주요 발명품의 하나로 등장하기도 하는 지퍼를 예전에는 ‘자꾸’라고 일컬었다. 알다시피 ‘자꾸’는 일본어에서 들여왔던 외래어다. 일본의 한 외래어 어원사전을 찾아보면, 1920년대 말에 팔리기 시작했던 한 지퍼의 상표이름 ‘책’(Chack)이 어원이란다. 곧 ‘책’이 ‘지퍼’의 의미로 일본어에서 ‘잣쿠’(チャック)로 쓴 걸 우리가 ‘자꾸’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영어 ‘지퍼’가 생긴 사연이 흥미롭다. 어떤 영어 어원사전에는, 1920년대에 지퍼가 달린 어떤 장화의 상표명이 ‘지퍼’였는데, 이때는 지금의 지퍼를 그냥 ‘집’(zip)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 뒤 ‘집으로써 닫거나 조이다’라는 뜻의 동사 ‘집’(zip)이 장화 상표명 ‘지퍼’로부터 생겨났고(언어학 용어로 ‘역형성’이라고 일컬음), 나중에 이 동사 ‘집’(zip)에 파생접사 ‘-er’이 붙어서 파생명사 ‘지퍼’가 생겨, 원래의 명사 ‘집’을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통명사 ‘지퍼’가 만들어짐에 따라 상표명 ‘지퍼’는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격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