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물을 두고 한가지 표현만 할 수밖에 없다면 누구나 답답해할 것이다. ‘느낌’도 사람 따라 달리 표현할 듯하지만 생각처럼 다양하지는 않다. 두루 아는 한정적인 낱말로 달리 표현할 여지가 그렇게 많을 수 없는 까닭이다. 한편으로,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이라 해서 상투적이라 하지는 않는다. 상투적이라면 낱말 자체보다는 그 말이 들어가 이룬 말덩이, 곧 짜임새가 주는 버릇투를 일컫는다.
예컨대 충분하다·족하다·넉넉하다·남는다·모자란다·부족하다·아쉽다 … 같은 말을 자주 쓴다고 상투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충분하다’는 말이 들어가 이룬 말뭉치들을 들춰보자.
“영화 잡지를 통해 보았던 이 영화 포스터는 나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잇따른 비리 사건은 한나라당을 비롯해 현 집권세력의 도덕성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미리 분명하게 선을 긋지 않은 것은 표심을 왜곡하고 헛공약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해서다/ 수입 쇠고기는 여학생들에게 내재된 특유의 모성애와 가족애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동사로 끝낼 말을 명사꼴로 바꾸고 토를 붙여 ‘-기에 충분하다’란 이은말을 만들어 썼다. 강조 효과가 그럴듯한 까닭에 흔히 써 먹지만 번역투에서 굳어진 말이다.
이는 그냥 “이 영화 포스터는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다”라든지 “~ 의혹을 사고도 남는다” 정도가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