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상류의 팔당은 ‘바다나루’로 불렸던 곳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한강을 이루고, 그 강변에 나루가 형성되었으니 ‘가람’(강)이 ‘바다’처럼 생각되어 붙은 이름임을 알 수 있다. 문헌에서는 이 지역을 ‘도미진’이라 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광주목 동쪽 10리 양근내 대탄 용진’의 하류에 있는 나루를 ‘도미진’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대탄’은 ‘한여흘’로, <용비어천가>의 한강 지류를 설명한 곳에 나오는데, 남한강의 이포(배애)를 지나 양근군에 이른 나루다. 북한강 줄기는 가평의 안반여흘을 지나 양근의 선돌나루(입석진)를 거쳐 도미진에 이른다. 두 문헌에서 ‘도미진’은 남·북 한강이 만나는 지점의 나루로 설명했으므로, ‘도미진’은 팔당 근처가 된다.
<용비어천가>에서는 ‘도미진’의 다른 이름으로 ‘두미진’이 있었음도 기록했는데, 일반적으로 고구려말에서 ‘물’을 뜻하는 차자 표기가 ‘매’(買)였음을 고려한다면, ‘두미진’은 ‘두매’가 변한 말일 가능성이 높다. 곧 ‘두물’의 다른 표기인 ‘두매’나 ‘두미’가 ‘두미진’으로 바뀌어 굳어진 형태인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구체적인 근거는 없으나 백제의 ‘도미 설화’도 도미진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개루왕의 핍박을 피해 도미 부부가 강물 따라 고구려로 갔다는 이야기를 상고하면, 그곳도 한강과 관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양수리’가 있고, ‘두물머리’도 작은 마을 이름으로 쓰이는데, 이는 나루 기능이 약화되고 물길이 변한 데서 까닭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