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비어천가>의 땅이름 표기 가운데 ‘마름골’은 ‘사음동’(舍音洞)과 대응된다. ‘마름’이 ‘사음’으로 바뀐 연유는 ‘차자 표기’ 원리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자를 빌려 우리말 단어를 적을 때 적용된 원리 가운데 하나는 ‘훈주음종’(訓主音從)이다. 이 원리는 우리말 단어의 뜻을 담고 있는 한자를 찾아 표기하고 그 다음에 우리말 단어의 음과 일치하는 한자를 덧붙여 표기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마음’을 표기할 때는 ‘마음 心’에 ‘소리 音’을 붙여 ‘심음’이라고 쓰고, ‘가을’을 표기할 때는 ‘가을 秋’에 ‘살필 察’(옛음은 ‘△·ㄹ’)을 붙여 쓰는 방식이다.
‘사음’의 舍’는 일반적으로 ‘집’이나 ‘관청’을 뜻하지만, ‘그치다’, ‘말다’의 뜻도 갖고 있다. 한글학회 <우리말큰사전>에서는 ‘마름’을 ‘지주의 위임을 받아 소작인을 관리하던 사람’으로 풀이하고, ‘사음’과 같은 뜻의 말이라고 하였다. 이는 한자 사(舍)에 ‘마름’이란 뜻이 있었음을 의미하는데, 대부분의 자전류에는 이런 풀이가 없다. 아마도 ‘말다’의 훈을 차용한 ‘사’에 ‘소리 음’을 덧붙여 ‘마름’ 대신에 사용한 한자어가 ‘사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기철·신용철의 <새우리말큰사전>에서는 ‘마름’이 조선 중기 이후에 생겼다고 하였는데, <용비어천가>를 고려한다면 이 말이 생성된 시점은 훨씬 오래 전이며, 이기영의 <고향>이나 문순태의 <타오르는 강>에서도 ‘마름’ 대신 ‘사음’을 즐겨 사용한 것을 보면, 말의 생명력이 얼마나 끈질긴지 짐작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