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25년(1494년), 사헌부에서 정호(鄭灝)의 첩인 ‘다믈사리’와 가까이 지냈다며 국문하니 월성군 이철견(李鐵堅)은 마음이 편치 않다며 벼슬자리를 떠나고자 하였다. 월성군은 자신이 다믈사리와 먼저 가까이 지냈고 나중에 정호가 데리고 살았다고 했으나 국문 과정에서 아닌 것으로 드러나 파직되었다.
다믈사리는 ‘다므사리’로도 불렸다. ‘-사리’(沙里)로 끝나는 이름에 눈사리·더부사리·들사리·빙사리·풍사리·험사리 …들이 있다. 중세 말 ‘다므사리’(다믈사리)는 고용살이를 이르는데, 뒷시대로 오면서 드사리(들살이), 더부사리(더부살이)로 바뀌었다. 사람이름에 쓰인 ‘가사리’는 돌고래의 새끼, 죽사리는 죽살이 곧, 생사를 가리킨다. 방언에서는 ‘죽살이(=죽도록) 고생만 했다’로도 쓴다. 간사리·앙사리는 간살스럽다·앙살스럽다는 말에서 왔다.
‘-사리’의 한자에 해당하는 말 ‘생’(生) 또한 이름접미사로 쓰였는데, 갈음생·검생·곰생·귀생·돌생·막생·말생·약생·니생·애생·연생·줌생·효생이 따위가 있다. 이름접미사 ‘-산’은 산봉우리 또는 산다는 뜻으로 쓰이는 듯하다. ‘어렵산이’란 이름에는 ‘어렵게 산 이’라는 ‘뜻맛’이 배어 있다. 가지산·곰산·귀산·금산·길산·긋산·논산·늦산·돌산·막산·말산·멍산·범산·울음산·은산·잣산이 따위 이름이 있다.
‘다믈다’는 ‘입을 다물다’라는 말에 남아 있는데, 합친다는 뜻으로 쓰였다. 고구려 추모왕이 비류국을 차지하고 외친 ‘다믈’(多勿)은 옛 땅을 되찾겠다, 옛 조선 땅을 ‘합치겠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