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와 소도
<삼국지> ‘위지 동이전’은 진(晉)의 진수가 우리 옛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마한과 관련된 기록에는 “나라마다 별도의 고을(읍)이 있어 이름하여 소도(蘇塗)라 했으며, 큰 나무를 세우고 큰 북을 매달아 신에게 제사 지냈다. 그 안으로 도망한 자는 모두 잡아가지 못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민속학자들은 ‘솟대’의 어원이 이 ‘소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양주동은 <국사 고어휘고>에서 ‘솟대’가 ‘소도’에서 왔다는 견해는 한문 해석을 잘못한 것뿐만 아니라 ‘솟대’의 ‘솟다’와 ‘소도’의 음을 유추한 결과라고 짚었다. ‘소도’는 마한 각 고을의 별읍 명칭일 뿐 ‘나무를 세우고 북을 매단 것’과는 무관하다. 그는 ‘소도’의 ‘소’를 ‘수컷’의 ‘수’, ‘도’를 ‘터’로 보아 ‘수터’ 곧 ‘남성신을 제사하는 곳’으로 풀이한다. 민속학자들의 풀이보다는 훨씬 과학적이다.
그런데 ‘소도’와 유사한 땅이름은 아직도 남아 있다. 충주 소태면은 ‘소탱이골’이었다. 솔탱이골·소태양면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소나무가 많이 자라는 지역이다. 소태면 구룡리에서 원주 귀래면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소탱이고개’이며, 그 아랫마을은 솔밭말 또는 송전(松田)이라 한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도 ‘소태현’이 나타나는데, 지금의 태안 지역을 가리킨다. 태안의 상징이 소나무이듯, 소태현과 소나무는 깊은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솔잎혹파리에다 재선충 피해가 전국을 휩쓰는 지금 벌레가 들지 못하도록 ‘소도’를 만들어 소나무를 보호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