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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다와 거들다
‘돕다’와 ‘거들다’ 같은 말도 요즘은 거의 뜻 가림을 하지 않고 뒤죽박죽으로 쓰인다. 국어사전들이 ‘돕다’를 찾으면 거드는 것이라 하고 ‘거들다’를 찾으면 돕는 것이라고 하니까 이런 뒤죽박죽이 바로잡힐 길조차 없다. 이들 두 낱말은 서로 비슷한 뜻을 지녀서 얼마쯤 겹치는 구석이 있지만 여러 가지 잣대에서 쓰임새와 뜻이 사뭇 다르다.
우선 ‘돕다’는 사람에 쓰이는 낱말이고 ‘거들다’는 일에 쓰이는 낱말이다. 사람을 돕고 일을 거든다고 하면 쓰임새가 옳지만 일을 돕고 사람을 거든다고 하면 쓰임새가 틀렸다. 또 ‘돕다’는 몸과 마음으로 주는데, ‘거들다’는 몸으로만 주는 것이다. 돕는 것은 지니고 가진 것을 모두 다해서 주지만 거드는 것은 몸에서 나오는 힘으로만 주는 것이다. 그래서 ‘돕다’는 주고받는 것이지만 ‘거들다’는 주기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돕는 것은 두고 보면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서로 도움이 되기 마련이지만 거드는 것은 주는 쪽에서는 주기만 하고 받는 쪽에서는 받기만 하면 그만이다. 넷째로 ‘돕다’는 주는 쪽에서 열쇠를 쥐고 있지만 ‘거들다’는 받는 쪽에서 열쇠를 쥐고 있다. 돕는 것은 받는 쪽에서 달라니까 주는 것이 아니라 주는 쪽에서 주려고 해서 주는 것이고, 거드는 것은 주는 쪽에서 주려고 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쪽에서 달라니까 주는 것이다. 그래서 ‘돕다’는 언제나 어디서나 주고받을 수 있도록 열려 있지만 ‘거들다’는 지금 벌어진 일에 갇혀서 주고 나면 끝난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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