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과 아골관
안시성(安市城)은 고구려 역사에서도 상징적인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양만춘 장군이 쏜 화살이 당태종 이세민의 눈을 맞힘으로써 당의 침략을 막아낸 곳이 그곳인 까닭이다. 그런데 안시성은 어떤 뜻을 지닌 말일까?
<이재속고> ‘화음방언자의해’에는 “압록강을 건너 구련성이 있는데, 명나라 때 요동에 소속되었다. <삼연집>에서는 아골관(鴉?關)이라 일컬었으며, 만력 병신년에 이름을 고쳐 ‘진강성’이라 하고 유격부를 설치했다. 청나라 사람들은 그 땅을 비워 두었으니 대개 요하의 동쪽으로, 본디 고구려의 옛 경계다. 당서에는 안시성은 없으나 곧 아골관이 그곳이다. 아(鴉)와 안(安)은 소리가 비슷하고, 골(?)과 시(市) 두 자모 또한 서로 바뀐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안시성의 옛이름으로 ‘아골관’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아골관’의 ‘골’(?)은 <집운>에서 ‘홀’(忽)과 같다. 이 ‘홀’이 고구려의 땅이름 가운데 마을을 뜻하는 말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안시성도 고구려의 수많은 ‘홀’이 붙은 땅이름임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안시성을 ‘안촌홀’이라 했으며, ‘환도성’이라고도 하였다. 또한 <연행록>을 비롯하여 많은 문헌 기록에는 안시성을 ‘봉황성’이라고도 했다. ‘환’(環)은 둥근 알을 뜻하며, 봉황은 신령스런 새이니 환도성과 봉황성은 그뜻을 한자로 살린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동북공정’에서 한국사 비틀기를 바로잡는 데 내려오는 땅이름의 실체도 좋은 자료가 될 듯하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국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