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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김과 뒤침
남의 글을 우리말로 바꾸는 일을 요즘 흔히 ‘옮김’이라 한다. 조선 시대에는 ‘언해’ 또는 ‘번역’이라 했다. 아직도 ‘번역’ 또는 ‘역’이라 적는 사람이 있는데,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쓰니까 본뜨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언해’든 ‘번역’이든 ‘역’이든 이것들은 모두 우리말이 아니지만 ‘옮김’은 우리말이라 훨씬 낫다고 본다. 그러나 ‘옮김’은 무엇을 있는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자리바꿈하는 것이다. 거기서 ‘발걸음을 옮기다’, ‘직장을 옮기다’, ‘말을 옮기다’, ‘모종을 옮기다’, ‘눈길을 옮기다’, ‘실천에 옮기다’ 같은 데로 뜻이 넓혀지지만 언제나 무엇을 ‘있는 그대로’ 자리바꿈하는 뜻으로만 써야 한다.
남의 글을 우리말로 바꾸는 것을 우리는 ‘뒤침’이라 했다. 글말로는 ‘언해·번역’이라 썼지만 입말로는 ‘뒤침’이었다고 본다. ‘뒤치다’를 국어사전에는 “자빠진 것을 엎어놓거나, 엎어진 것을 젖혀놓다” 했으나 그것은 본디 뜻이고, 그런 본디 뜻에서 “하나의 말을 또 다른 말로 바꾸어놓는 것”으로 넓혀졌다. 어릴 적에 나는 서당 선생님이 “어디 한 번 읽어 봐” 하시고, 또 “그럼 어디 뒤쳐 봐” 하시는 말씀을 늘 들었다. ‘뒤쳐 보라’는 말씀은 가끔 ‘새겨 보라’고도 하셨는데, ‘새기라’는 말씀은 속살을 알아들을 만하게 풀이하라는 쪽으로 기울어져 ‘뒤치라’는 것과 조금은 뜻이 달랐다. 어린 시절 나는 ‘읽다’와 더불어 ‘뒤치다’, ‘새기다’, ‘풀이하다’ 같은 낱말을 서로 다른 뜻으로 쓰면서 자랐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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