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晉:265~316)나라 시대, 제(齊)나라의 도읍 임치(臨淄) 출신의 시인에 좌사(左思)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추남에다 말까지 더듬었지만 일단 붓을 잡으면 장려한 시를 썼다.
그는 임치에서 집필 1년 만에《제도부(齊都賦)》를 탈고하고 도읍 낙양[洛陽:하남성(河南省) 내]으로 이사한 뒤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도읍 성도(成都), 오(吳)나라의 도읍 건업(建業:南京), 위(魏)나라의 도읍 업의 풍물을 읊은《삼도부(三都賦)》를 10년 만에 완성했다. 그러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화(張華)라는 유명한 시인이《삼도부》를 읽어 보고 격찬했다.
“이것은 반(班).장(張)의 유(流)이다.”
후한(後漢) 때《양도부(兩都賦)》를 지은 반고[班固:《한서(漢書)》저술],《이경부(二京賦)》를 쓴 장형(張衡)과 같은 대시인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자《삼도부》는 당장 낙양의 화제작이 되었고, 고관대작은 물론 귀족.환관.문인.부호들이 그것을 다투어 베껴 썼다. 그 바람에 ‘낙양의 종이값이 올랐다[洛陽紙價貴]’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