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패왕 항우와 한왕 유방에 의해 진나라가 멸망한 한왕 원년(元年:B.C. 206)의 일이다. 당시 한군(漢軍)에는 한신(韓信)이라는 군관이 있었다. 처음에 그는 초군(楚軍)에 속해 있었으나 아무리 군략(軍略)을 헌책(獻策)해도 받아 주지 않는 항우에게 실망하여 초군을 이탈, 한군에 투신한 자이다. 그 후 한신은 우연한 일로 재능을 인정받아 군량을 관리하는 치속도위(治粟都尉)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직책상 승상인 소하(蕭何)와도 자주 만났다. 그래서 한신이 비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안 소하는 그에게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 무렵, 고향을 멀리 떠나온 한군은 향수에 젖어 도망치는 장병이 날로 늘어나는 바람에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 도망병 가운데는 한신도 끼어 있었다. 영재(英才)를 자부하는 그는 치속도위 정도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소하는 한신이 도망갔다는 보고를 받자 황급히 말에 올라 그 뒤를 쫓았다. 그 광경을 본 장수가 소하도 도망가는 줄 알고 유방에게 고했다. 그러자 오른팔을 잃은 듯이 낙담한 유방은 노여움 또한 컸다. 그러데 이틀 후 소하가 돌아왔다. 유방은 말할 수 없이 기뻤지만 노한 얼굴로 도망친 이유를 물었다.
“승상(丞相)이란 자가 도망을 치다니, 대체 어찌된 일이오?”
“도망친 것이 아니오라, 도망친 자를 잡으러 갔던 것이옵니다.”
“그래, 누구를?”
“한신이옵니다.”
“뭐, 한신? 이제까지 열 명이 넘는 장군이 도망쳤지만, 경은 그 중 한 사람이라도 뒤쫓은 적이 있소?”
“이제까지 도망친 제장(諸將) 따위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사오나, 한신은 실로 ‘국사무쌍’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옵니다. 만약 전하께오서 이 파촉(巴蜀)의 땅만으로 만족하시겠다면 한신이란 인물은 필요 없사옵니다. 하오나 동방으로 진출해서 천하를 손에 넣는 것이 소망이시라면 한신을 제쳐놓고는 함께 군략을 도모할 인물이 없는 줄로 아나이다.”
“물론, 과인은 천하 통일이 소망이오.”
“하오면 한신을 활용하시오소서.”
“짐은 한신이란 인물을 모르지만 경이 그토록 천거하니 경을 위해 그를 장군으로 기용하겠소.”
“그 정도로는 활용하실 수 없사옵니다.”
“그러면 대장군에 임명하겠소.”
이리하여 한신은 대장군이 되었다. 즉 기량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서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