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육지탄(脾肉之嘆) / 성공하지 못하고 한갓 세월만 보냄에 대한 탄식.
《出典》'三國志' 蜀志
유비(劉備)는 198년에 조조(曹操)와 협력하여, 한 마리 이리와 같은 용장(勇壯) 여포(呂布)를 하비에서 격파한 다음, 한(漢)의 임시 수도 허창(許昌)으로 올라가 조조의 주선(周旋)으로 헌제(獻帝)에게 배알(拜謁)하고 좌장군에 임명되었지만, 그대로 조조의 휘하에 있는 것을 싫어하여 허창을 탈출하여 각지로 전전한 끝에 황족(皇族)의 일족인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의지하여 조그만 고을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유표에게 초대되어 형주성(荊州城)에 갔을 때, 변소에서 볼일을 보고 일어서던 유비는 문득 자신의 넓적다리에 살이 많이 붙은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눈물을 흘렸다.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오자 유표가 유비의 눈물 흔적을 보고는 그 까닭을 묻자, 유비의 대답은 이러했다.
"나는 지금까지 항상 말을 타고 전장을 돌아다녀서, 넓적다리에 살이 붙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말을 타지 않고 너무 빈둥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살이 들러붙었습니다. 세월이 가는 것은 빨라 늙음이 이르는데도, 아직 공업(功業)을 세우지 못하였으니 그러므로 슬플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