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전(左傳) 희공(僖公) 14년조의 이야기. 춘추시기, 진(晋)나라에 내란이 발생하자 공자 이오(夷吾)는 진(秦)나라로 도망하였다. 이오는 귀국하기 전에 다섯 성을 진(秦)나라에 감사의 대가로 주기로 하였으나, 진(晋)의 군주, 즉 혜공(惠公)에 즉위하자 생각을 바꾸었다. 기원전 647년, 진(晋)나라에 가뭄이 들었다. 진혜왕은 지난 날의 일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대부 백리해(百里奚)의 권유로 진(晋)나라에 양식을 보내 주었다. 이듬해, 진(秦)나라는 기근이 들자 진(晋)나라에서 곡식을 사오려 했으나, 진혜공은 곡식을 팔지 않았다. 대부 경정은 진혜공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은혜를 잊는다면, 이는 무친(無親)입니다. 또한 남의 어려움을 즐기는 것은 불인(不仁)이고, 물건을 남에게 주지 않는 것은 불상(不祥)이며, 이 일로 이웃 나라에게 죄를 짓는 것은 불의(不義)입니다.
진혜공은 이를 틈타 진(秦)나라를 기습하였다가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렇듯 幸災樂禍 란 남의 어려움을 보고 기쁨을 느낌 을 뜻하는 말이다.